[국내] 추천여행

(익산) 가볼만한곳 무왕 제석사지

롤라❤️ 2020. 3. 2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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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왕궁

백제의 수도 익산




백제의 마지막 왕궁인 왕궁리 유적지를 마주 보고 있는 제석들입니다.

무왕이 백제의 수도를 익산으로 옮기면서 궁궐 부근에 세운 사찰인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깊은 산중의 사찰은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한 조선시대 들어 대부분 산중으로 들어갔죠. 그 이전에는 대게 이렇게 평지에 있었다고 합니다.

왕궁리 유적지 주변을 봐도 이해가 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미륵사지로 상당한 크기의 사찰을 당시 기술로 산속에 짓기란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봄이 왔음에도 내 마음엔 봄이 오지 않았다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딱 맞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화꽃향기 물씬 풍기는 동네 어귀지만, 아직은 코로나19로 자유로운 모임 대신 사회적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분들이 많죠.




사방이 탁 트인 제석사지입니다.

싱그러운 봄바람이지만, 소나무 가지가 휘청거릴 정도로 센바람이 부는데요, 아직은 옷을 두껍게 입지 않으면 감기 걸릴 수 있으니 바깥 외출 시에는 꼭 외투를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사적 제405호, 제석사지

1963년부터 사적이 지정!


제석사지는 절터로 사적 제405호입니다.

사적이란 역사적, 학술적, 관상적, 예술적 가치가 커서 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문화재인데요, 역사상 중요한 사실이 있었던 건축물이나 시설로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1963년부터 사적이 지정되었고 2014년 기준 490점이 있다고 합니다.

제석사지는 199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펼친 결과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등의 기단이 확인되었고 출토유물은 왕궁리 유적전시관에 전시되었으며 1998년 24,218㎡ 면적이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석사지에 관한 문헌은 1970년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이 익산으로 왕궁을 천도해 새롭게 국가를 경영하는 데 639년 11월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재를 입고 불당, 7층 목탑, 회랑과 승방 등이 모두 불탔다고 합니다.

탑의 심초석 내 불사리 등을 담은 목 칠함이 있었는데 오직 불사리병과 반양경, 칠함만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이후 새로 사찰을 지어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는데요, 다시 언제 훼철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조감도를 보면 작지만 규모가 알뜰한 사찰로 보입니다.

중문부터 목탑, 금당, 강당으로 이어지는 1금당 1탑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이며 사방에 회랑이 있었습니다.




익산 스탬프 투어에서 제석사지에 도장 꽝!

앞으로 익산에서 백제의 유적지를 만날 때마다 인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석사지는 수형이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사방을 둘러싸 운치가 좋습니다.

짙은 안개가 낀 날에 오면 더 독특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는데요, 오늘은 연무 대신 심술부리는 바람이 연신 흔들어 댑니다..

639년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리고 화재!




목탑지 한가운데 정사각형 심초석이 남아 있습니다.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이 심초석 여러 가지 7보와 불사리, 채색, 수정병과 동에 금강반야경을 새긴 사경, 이를 담은 목칠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639년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리고 화재로 아수라장이 된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뒤로는 금당터와 강당터, 추정 승방터가 있습니다.

추정 승방터는 현재 공사 중입니다. 2020년 5월 12일까지 공사 기간인데요, 조감도가 없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승방지 및 주변 정비 작업이니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규모가 꽤 커 보이는데요, 덩그렇게 승방지만 있는 게 아니라 제석사지에서 체험도 가능한 다목적 승방이 건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비가 다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가 큰 제석사지입니다.




발굴조사 및 유적 정비 과정에서 수습된 석재는 동건물지 주변에 전시했습니다.

주로 초석과 지대석, 갑석 등인데요, 천년 세월을 변함없이 버티고 있습니다.




익산의 석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아마 그 시절부터 익산의 솜씨 좋은 석공들은 어디를 가도 환대를 받았을 것 같은데요, 정교하게 깎아낸 예술 같은 석재들이 탑이 아님에도 하나같이 정교해 놀라울 정도입니다.



마을과 함께 천년 이상 함께 해온 제석사지는 무왕이 궁성을 지은 후 왕실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왕실사찰로 지었다고 합니다.

천도하기 전 수도 사비에는 이와 비슷한 관북리 유적과 정림사지가 있습니다. 아마 무왕은 익산으로 천도하면서 그와 비슷한 사찰로 제석사지를 창건한 것 같은데요, 왕궁리 유적지에 왔다면 꼭 인근에 있는 제석사지도 함께 관람하며 무왕의 흔적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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