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

조경기사와 조경사 등 실무에 도움을 주는 조경 핵심 이론 요점 요약 정리 4. 한국조경사 (2)

롤라❤️ 2022. 2. 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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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조경에서 나타나는 구성 요소로는 연못, 정자, 화계, 담장, 다리, 보도, 동물, 석

가산, 굴뚝, 화목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세 가지 연못, 정자, 화계에 대해서 알아보

도록 하자.

1. 첫 번째 중요 구성요소는 연못이다.

연못은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못이라는 말로부터 생겨난 말로 못은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연못의 기원은 관개경작과 연관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와 신라에서 연못을

논밭에 물을 대는데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한 저수지의 예로는 백제가 조성해 놓

은 전라 북도 김제군에 있는 벽골제와 신라 때의 것으로 알려진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의

림지,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공검지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군사상의 필요에 따르는 군용지도 조성되었는데 신라의 반월성과 고구려의 안학궁의

수비를 위하여 성루 밑에 파놓은 해지와 안학궁에 딸린 피난산성인 대성산성 속에 파놓았던

수많은 용수지들이 있다. 점차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왕궁이나 권력자들의 저택 안에 정원

이 꾸며지기 시작하면서 정원 안에 못을 팠는데 못의 운치를 돋우기 위하여 물 속에 섬을

쌓아올리거나 수초를 심어 가꾸는 방법이 실시되었다.

고려시대에 불교가 성행하면서 송나라와의 잦은 교류에 의해 수초로서 연을 즐겨 가꾸는 경

향이 생겨나 마침내 정원 안에 꾸며놓은 못을 연못 또는 연지,연당으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관상을 위해 꾸며지는 연못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백제의 진사왕이 391년에 한산성 안에 못을 파고 가산을 쌓아 아름다운 못새를 키우고 진귀

한 꽃을 심어 가꾸었다는 것이 최초이다. 고구려 장수왕은 42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면

서 안학궁을 지었는데 중궁지 서편의 물가에 가산이 쌓인 연못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 한다. 500년에는 백제의 동성왕이 공산성 안에 못을 파서 놀이터로 삼았다고 하며 634년

에 무왕이 부여의 남쪽에 궁을 짓고 오늘날 궁남지라고 하는 큰 연못을 팠다. 신라는 674년

(문무왕 14년)에 반월성 밖에 큰 연못을 꾸몄다. 이것이 오늘날 안압지라고 널리 알려진 연

못이다.

고려시대가 되면 수많은 절이 지어졌고 절마다 연못이 꾸며져 이 풍습이 일반 저택까지도

널리 퍼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민간 주택에서도 대문 밖의 바깥마당 좌우에 하수를 처

리하고 화재 때 용수로 쓰기 위해 2개의 못이 꾸며진다. 처음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꾸며

졌으나 못에 연을 심어 관상을 위한 연못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궁궐의 경우는 주로 후원에 못이 꾸며져 놀이를 위한 자리로 쓰였으나 경복궁의 경회루지와

향원지처럼 후원이 아닌 곳에 꾸며지기도 하였다. 그밖에 풍수설이 가리키는 바에 의해 광

화문 안에도 두 개의 연못이 꾸며졌으며 광화문 밖의 육조에도 각기 못이 있어서 여름이 되

면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우리 나라에 물을 이용한 수경의 조성은 삼국시대부터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 종

류는 지당(池塘), 계간(鷄澗), 정천(井泉)등이 있다. 낮은 곳에 물이 괸 것을 池, 뚝을 쌓아

물이 괴도록 한 것이 塘이라 하는데 이를 다시 호안에 곡선으로 조성한 曲池와 직선으로 처

리한 方池, 곡선과 직선을 혼합한 苑池로 나눌 수 있다.

오랜 옛날에는 곡지와 방지 두 가지가 모두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곡지는 없어지

고 방지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못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드는 기

법이 시작되는데 이를 방지원도형이라고 한다. 방지원도형의 못은 음양의 결합에 의하여 새

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대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며 자손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는 유교의 영향에 의해서다.

백제의 궁남지, 진주지,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등과 같이 연못 안에 섬을 만들었다. 연못

안의 섬은 신선 사상에서 연유한 삼신산, 즉 영주(瀛州), 봉래(蓬萊), 방장(方丈)의 섬으로

불로 장생을 기원했던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2. 두 번째 중요 구성 요소는 정자이다.

정자라는 명칭은 한자어이다. 따라서 그 의미도 한자에서 찾아야 하겠다. 정자 정(亭)자

는 경치가 좋은 곳에 놀기 위하여 지은 집이라는 뜻의 글자이다. 물론 주막집 정 역

말 정 기를 정 평평하게 할 정 고를 정 곧을 정  머무를 정 우뚝

솟을 정이라는 뜻도 있긴 하다.

우리나라는 자연 경관이 아기자기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철따라 변하는 산과 뜰과

강의 풍정을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우리 민족에게 정자는 극히 자연스러운 존재였

다.

신체의 휴식이나 잔치, 놀이를 위한 기능보다는 자연인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같이 하

려는 정신적 기능이 더 강조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삶의 터전인 주거지 연못 옆에, 산천 경계나 들이 잘 보이는 곳에 으레

정자가 있다.

정자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단정할 수 없으나 형태상의 특징으로 보

아 그 연원을 고구려의 부경이라는 소창과 시골에서 쉽게 몰 수 있는 원두막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고대부터 이미 정자를 지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

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권 27 백제본기중 의자왕조의 의자왕 15년

(655)에 태자궁을 지극히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최초

이다. 그러나 정자보다 규모나 법식에 있어서 상위에 있는 누에 대해서는 이보다 앞선 무왕

37년(636)에 망해루에서 군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자는 풍류를 즐기고 경치를 완상하고 놀이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

서 정자는 지배층의 문화적 단편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조원 기법과 장식적인

치목 기술에서 선조들의 빼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수 있다.

한국 정자의 조경은 자연적인 숲이나 주변 환경 요소인 냇물이나 강 등을 자연적인 상태 그

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외부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이 조경이 인위적이고 기하

학적인 것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한국의 조경은 본래의 자연 형태가 그대로 주변의 조경요소

로 이용되었다. 이는 자연 숭배사상 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겠다. 간혹 시대의 흐름

에 따라 이러한 조경 공간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집안에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으나 예로부터

정자는 위락과 조망을 위한 휴식 공간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경관과 주어진 자연 상태 그대

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직선적이고 윤곽적인 처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국의 조경은 그 주위를 형성하는 수목에도

많은 배려가 있었다. 수목에 인위적인 조형 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형태로 이

끌며 사철의 변화에서 주는 자연의 색상으로 구조의 단순함을 보완하였다.

정자의 평면 유형은 주변환경과의 조화, 기능 수용 등의 여건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방과 방의 연결일 경우에는 많은 제약을 받으나 정자는 단일 건물이므로 평면 구성을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할 수 있다. 외부의 독립 공간으로서 주위 환경과의 조화를 위해

한옥의 일반적인 평면 형태인 칸(間)의 형식에서부터 정(丁)자형이나 아(亞)자형의 평면까지

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수원의 방화수류정과 같은 다각형의 평면 구성도 있다.

정자의 초석은 격식 있는 건축물에 두는 가공된 초석과는 달리 자연 암반이나 자연 초석 위

에 세워지는 것이 상례이다. 초석의 위치는 건축 구조상의 평면 형태 또는 건축 목적에 따

른 기둥 배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자의 가구 구조에는 일반적으로 가구 구성의 기본이

되는 3량집의 작은 건물로부터 건물의 규모에 따라 큰 량을 두고 있는 건물도 있으나 보통

5량 집 구조의 정자가 가장 흔하다.

일반적으로 정자의 바닥은 지면으로부터 동바리, 멍에 ,장선, 등로로 구성되는 표상(表象) 바

닥이거나 한 층 또는 반 층 높이의 기둥을 달아 마루를 구성하는 누마루 형식이다.

정자의 천장은 연등장과 빗천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며, 난간이 설치되는 주공간은 성

격에 따라 형태와 구조를 두가지로 대별 할 수 있다. 평난간은 걷거나 움직이는 동성 위주

의 공간에 가설되며 계자난간은 공간의 연속, 시각의 연속을 요구하는 정적 공간에서 안정

보호를 위한 시설을 부과한 형태이다. 난간은 그 구조 자체가 갖는 조형성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의 조형미를 이끌어 가는 부분이며 더 나아가 공간 연출에 따른 이상적인 시각 예술이

기도 하다.

정자는 소규모 건축이므로 많은 의장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현판이나 주련, 낙양,

난간의 하엽무늬 단청 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정자에 걸맞는 시구나 정자의 이름을 새긴 현

판을 걸기도 하고 곡선을 연속적으로 초새김한 낙양이나 하엽 역시 직선 또는 수직, 수평적

인 기둥이나 난간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한 변화의 요소이다. 그리고 외관상으로 많은 위장

적 요소를 주는 정자의 지붕은 초가지붕의 초정에서부터 팔모지붕, 다각지붕 등 많은 형태

가 있다.

정자 조영의 예로는 애련정, 능허정, 관란정, 의상대, 추월정, 삼련정, 독락정, 백화정, 농월

정, 부용정, 관람정 등 이 밖에 많은 정자들이 있다.

3. 세 번째 중요 구성 요소는 화계이다.

화계라는 것은 담장 밑에 석단을 계단 형태로 쌓아 만들어 계단에 화초 및 관목류를 심어

가꾸는 것으로 건물의 터를 고르는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형식으로 옹벽과 화단을 겸한

형식으로 조성되며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전이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화계

는 마당과 건물 사이에 만들어지는데, 주로 산지 사찰에서 많이 나타나는 형식으로 사찰의

공간이 점승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접점을 처리하기 위해 고안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옛집의 입지상 배산임수를 따라 집 후면의 언덕을 깍아 만든 계

단에 조성되어 가옥의 가장 은밀한 곳에 만들어 졌는데, 화목류(앵두, 살구, 능금나무, 철쭉,

진달래 등) 외에도 괴석 및 장식문양을 새긴 석물이 놓이기도 했다. 화계는 조선 시대 이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조선 시대에 많이 나타난

고 방지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못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드는 기

법이 시작되는데 이를 방지원도형이라고 한다. 방지원도형의 못은 음양의 결합에 의하여 새

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대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며 자손이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는 유교의 영향에 의해서다.

백제의 궁남지, 진주지,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등과 같이 연못 안에 섬을 만들었다. 연못

안의 섬은 신선 사상에서 연유한 삼신산, 즉 영주(瀛州), 봉래(蓬萊), 방장(方丈)의 섬으로

불로 장생을 기원했던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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