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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황량미가 넘치는 은파호수공원 방문 후기

롤라❤️ 2020. 1. 12.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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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호수공원 본래 이름은 미제지(米堤池)이다. '쌀 미(米)'와 '둑 제(堤)' 합성어인 '미제지'는 우리말 풀이로 '쌀뭍방죽'이다. 방죽 동북쪽 마을 사람들은 '절메 방죽'이라 하였다. 은파(銀波)라는 이름이 지어지기 전에는 '미제방죽', '미제저수지', '미룡저수지' 등으로 불렸다. 방죽 둘레에 굽은 귀가 많아 '아흔아홉귀 방죽'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옛날 한 아기장수가 미제방죽을 서울터로 만들려고 100귀로 만들면 밤사이에 한 귀가 무너지곤 해서 도로 아흔아홉 귀가 돼버려 끝내 실패하고 울면서 떠났다는 내용의 <애기장수 서울터 만들기> 전설도 내려온다. 비록 설화지만 방죽에 굴곡이 많고 지형을 따라 보여주는 경관이 뛰어났음을 암시한다.

물 색깔이 녹색이라서 놀랐다


분수가 아름다운 야외광장에서 물빛다리를 건너면 인공폭포가 나온다. 그곳에 '방아동'이 있었다. 그곳에서 왼쪽 산책길은 안백두게, 새 터, 절메산, 임방절, 벌이마당으로, 오른쪽 산책길은 사창골, 용처, 개정지로 이어진다. 개정지를 지나면 제방(堤防)이다. 제방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천연 눈썰매장이 되어 아이들 놀이터로 변한다. 미제방죽 주변의 지명 유래를 알아본다.

▲ 나룻리(羅雲里): 미제지와 접한 나운동의 옛 지명이다. 미제지가 생기기 전까지 배가 이곳까지 닿아 물화를 실어 날랐다고 전한다. 마을이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배가 닿았던 나루터라 해서 나룻리라 부르게 됐다. 나룻리는 일제강점기 한자 표기화 하면서 '나운리(羅雲里)'로 쓰다가 광복 후 군산시로 편입되면서 나운동(羅雲洞)이 됐다.


▲ 임방절: 임방절은 두 가지 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임방(壬方)이라는 뜻이다. 壬方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정도 안쪽을 가리킨다. '절메산'에서 보면 '임방절'이 정확하게 임방(壬方)이 된다. 두 번째는 임방(任房)으로 옛날 보부상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는 뜻이다. 임방절은 이곳에 있던 절(寺) 이름이다.

▲ 벌이(보리) 마당: 나룻리에서 새 터(한밭골)로 들어오는 어귀를 일컫는다. 미제지는 선제뜰(숙답) 관개 저수지로 그 옛날 이곳은 미곡 집산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전국의 미곡상들이 이 지역의 쌀을 각지로 유통시켰을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장마당을 떠도는 등짐장수와 봇짐장수까지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팔았던 마당이란 뜻의 지명이다. 
▲ 절메산(寺山): 미제지 수면 가운데로 산이 길게 남으로 커다란 함선처럼 떠 있는 모습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 동쪽에 자그만 마을이 있었는데 제방 축조공사 때 수몰됐다. 절메산 한자 표기는 '寺山', 우리말은 '절 메'이다. '절메산'은 메(뫼, 산)가 두 번 겹친 격인데 우리말에서 끝말이 겹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 새 터: 미제지 동북쪽 고샅을 '절메'라 하였다. 그 동쪽으로 '새 터'가 있다. '새 터'는 '한밭골'(大田里)에서 새로 닦은 터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마을을 형성한 데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 안백두게: 백두게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백두게는 미제방죽과 인접한 마을로 옛 지명은 '백토리'였다. 백토가 어원변이 되어 백두로 부르게 됐단다. '게'는 마을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하얀 흙(白土)이 나와 그릇을 구웠다고 전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방아동: 안백두게 고샅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지금은 물에 잠겼으나 널찍한 밭과 공터가 있었고 산딸기가 지천이었다고 전한다. 그 언저리를 '방아동'이라 하였다. 옛날에 벼를 찧는 방앗간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사창골: 고려와 조선 시대 이곳에 사창(社倉)을 두고 방아를 찧어가곤 했던 쌀곳마을이 아닌가 싶다. 군산의 향토사학자들은 옛날 이곳은 쌀의 입출이 빈번했으며 째보선창을 통해 지방과 서울로의 수송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은파호수 입구 길목 고샅을 '사챙이'라 불렀는데 이도 '사창'의 와전으로 보인다. 이곳에 다랑논이 층층이 있었다고 전한다.

▲ 용처: 미제지 '사창골'에 다다르는 산자락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지름 70m정도의 늪지대가 있다. 예로부터 이곳을 용처(龍處)라 불러왔다. 이곳에서 물이 솟아 방죽의 원천수가 되었다는 뜻으로 용천(龍泉)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 개정지: 개정지는 야외 부엌(정지)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야외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부엌이라는 뜻. 위쪽에 있는 사창에 벼와 쌀의 입출고가 빈번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므로 일꾼들의 밥을 부쳐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개정지'를 마련하여 밥을 짓던 곳으로 전해진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호수
카누 빌리는 곳이 있어서 카누를 타는 사람도 있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황량미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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