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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을 대표하는 명산 동악산과 도림사의 모습과 역사를 소개드립니다.

롤라❤️ 2024. 12. 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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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료 : 성인 기준 2,000원

▷ 주차요금 : 별도 주차요금 징수 없음

▷ 자차 이용 시 : 경내 입구까지 가능

▷ 대중교통: 곡성역과 곡성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가능하고  입구(큰길)까지 농어촌 버스 운행합니다.

▷ 숙소 : 주변에 도림사 오토캠핑장과 키즈펜션 등의 숙소가 있습니다.

876년( 헌강왕 2) 도선이 절을 중창했다는 것이 도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원효대사 창건설에 대해서는 1757년에 작성된 길상암 나한전 중수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선의 중창 이전에도 도림사가 있었고, 신덕사라는 절도 별도로 있었다는 내용이 각종 지리지에 등장합니다.   

 

원효가 도림사를 창건한 시기로 알려진 서기 660년은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 직전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욕내군(현재 곡성)은 여전히 백제 영역에 속해 있었어요.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신라 승려 원효가 백제 땅에 들어와 절을 세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효를 중심에 놓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시 원효와 의상 그리고 윤필은 신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고 대중에게 설법을 베푸는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 원효가 당시 성산(聖山)으로 일컬어진 동악산에서 수행했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더불어 도림사 창건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습니다.  

 

'실제로 원효가 동악산에서 수행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동악산의 입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고유의 수련법인 선도(仙道)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중 수행의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화랑도와 고구려의 조의선인처럼 국가 차원에서 장려할 만큼 선도가 대중화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불교 역시 선도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받아들여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중국 고승 원명법사가 동악산을 찾아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불교와 선도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오늘날 사찰마다  세워진 산신각도 거기서 유래합니다.      



선도 수행자들이 선호했던 명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심산유곡이 아니었습니다. 대중들이 사는 곳과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좋은 기운이 흐르는 산을 명산으로 삼았습니다. 맹수나 산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과 생필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곡성의 동악산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명산입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성산이라(聖山)일컬어 졌지요.   

그렇다면 원효 일행은 어떤 경로를 거쳐 동악산을 찾아왔을까요? 서라벌(경주)에서 출발했다고 가정한다면, 산청, 함양, 남원을 거쳐 고달나루를 통해 섬진강을 건넜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길상암 나한전 중수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효 혼자가 아니라 의상과 윤필이 동행했을 것입니다. 육로를 통한 1차 당나라 유학을 실패한 이후, 원효와 의상은 줄 곳 함께 다녔고, 재가 수행자인 윤필이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들이 서울 관악산 기슭에서 움막을 짓고 함께 수행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 삼막사 ) 동악산에도 분명 함께 왔을 것입니다.   

동악산은 이웃 지리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하지만 기운은 큰 산 못지않습니다. 골짜기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릅니다. 육산의 품에 숨겨진 골산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단한 기세를 자랑합니다. 이런 곳이 진정한 명산 아니겠습니까? 

전설에 따르면 정진을 거듭하던 원효 일행은 마침내 육신의 한계, 시공의 경계를 초월하고, 모든 것이 하나 된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끌림에 따라 성출봉 동굴에서 바위가 16나한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고 그 바위들을 수행하는 곳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러자 산이 밝은 빛을 뿜으며 풍악을 울렸다고 합니다.   

 

절마당에 들어서면 성출봉에서 뻗어내려온 산줄기에 기대선 전각들이 시야를 가득 채워줍니다. 이 소박해 보이는 절집에는 괘불탱과 '아미여래설법도' 이렇게 보물로 지정된 국가문화유산이 두 점이나 있어요. 도림사 일원도 도지정 문화재입니다. 불교 미술의 걸작인 '아미여래 설법도'는 보광전에 모셔진 불상 뒤편에 걸려 있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어요. 

앞에서 기술한 내용은 곡성에 내려오는 구전설화와 길상암 중수기를 참고하여 상상력을 가미한 것입니다. 실제로 서기 660년에 이곳 도림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원효가 실제로 동악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듬해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다가 해골을 바가지로 착각하고 발걸음을 당나라가 아닌 중생을 향해서 돌렸다는 유명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후 요석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하며 대중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왕실종교, 귀족종교, 호국종교, 기복 신앙 차원에 머물러 있던 신라의 불교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큰 스승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아담하고 소탈한 모습의 산문(山門)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대중과 함께 호흡했던 원효의 성품이 느껴지는 문입니다. 현판에 새겨진 천재화가 의재 허백련의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맛을 주는 글씨가 유난히 정겹습니다. 이문을 통과하여 절마당에 들어설 때는 누구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아요.  

 

 

부담 없는 산사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도림사를 강력 추천합니다. 교통이 좋으면서도 산사 특유의 운치는 심산유곡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저마다 나름의 도를 추구하고 있으니, 도림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절집입니다. 도림사에서 나만의 도를 찾아가세요^^

지금도 도림사에서는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천년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그런 상상을 하며 산문을 나오는데 아늑한 오후 햇살에 잠긴 도림사 계곡이 한층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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