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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추천여행

황산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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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0년]] 당군이 [[황해]]를 건너 덕물도[* 지금의 [[인천광역시]] [[옹진군(인천)|옹진군]] [[덕적면|덕적도]]]에 [[상륙]]하면서 나당 연합군의 본격적인 백제 공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덕적도에서 나당연합군이 만났음에도 백제가 이를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완전하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수나라부터 서해를 횡단하여서 평양으로 직공하던 적이 몇 번 있었고, 전과는 달리 약간 남쪽으로 오기는 하였지만, 신라왕이 군대를 이끌고 한강유역까지 북상하였기에 황해도를 공격해서 평양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이전까지 중국의 목표는 오로지 고구려로, 고구려만 주구장창 공격하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백제를 갑자기 공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였다. 다만 백제로의 공격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이후 덕적도에서 당군이 남하하고, 신라군도 남하하면서부터 백제에 대한 공격이 확인되었다.] 백제 조정의 전략은 [[성충]], [[흥수]]의 말대로 기벌포와 탄현에서 당, 신라군을 동시에 모두 저지하려는 전략과 당군의 상륙을 일단 허용한 뒤 좁은 길목에서 당군에게 공세를 가하려는 전략이 맞서게 된다. 백제 조정은 성충과 흥수의 1안 대신, 조공으로 신라군의 전진을 저지하는 한편, 수도 주력군으로 기벌포[* 現 [[서천군]] 장항읍]에 상륙해서 [[금강|백강]]을 거슬러오르는 당군을 요격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성충과 흥수의 1안은 단순한 전략적 판단 외에,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기존 귀족세력과 화합하여 나당 연합군의 공세에 맞서자는 의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백제 왕실과 귀족 세력은 극도로 깊은 골이 파여있었고, 이 상황에서 재결합하기 위해서는 백제 왕실로서도 파격적인 양보가 필요했으므로 이러한 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1안과 2안 모두 나당연합군의 합류를 저지하거나 최소한 지연시키는 것을 기본적인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백강에서 당군을 요격한다 해도 나당연합군의 합류를 저지하려면 최소한 탄현 근처에서 신라군을 잡고 있어야 하므로, [* 신라가 탄현을 우회하는 루트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이 경우의 우회루트가 익산이나 대전인데 이쪽은 탄현보다 대규모 거점이었다는 문제가 있으나, 신라 병력이 워낙 대규모였다는 것, 국왕직속병력은 모두 차출되어서 [[백강 전투|백강으로 달려갔을 것]]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지키는 귀족 병력들이 얼머나 중앙군과 일치단결하여 대처할지에 대해서 백제왕실이 불안해했을 수는 있다.--그런데 탄현의 위치는 아직까지 불명확한데, 유력 후보지 3곳 중 하나가 대전동구와 옥천 사이에 있는 마도령이여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백제의 기민한 초기 대응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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