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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익산)토성 개요 익산토성은 금마면의 면 소재지에서 서북쪽 약 1.5km 떨어진 오금산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에는 미륵산이 있고 앞쪽은 익산평야가 내려다보인다. 서동왕자가 마를 캐고 오금(五金)을 얻은 백제시대 토성!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오금산에 있는 산성인데, 둘레는 약 714m의 성으로 흙과 돌을 같이 사용하여 쌓은 테머리식 토성이다. 현재 토성 내에는 남문지와 수구지, 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오금산성(五金山城)’, 보덕성(報德城)‘ 이라 불리어 지는데, 오금산성은 백제 무왕이 어려서 이곳에서 마를 캐면서 오금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보덕성은 보덕국왕인 안승이 670년 6월 금마저(金馬渚=현 익산)에 자리 잡은 후 684년 11월까지 보덕국이 자리한 곳이라.. 더보기
(익산) 왕궁리 유적 개요 왕궁리성지라 불리는 왕궁리유적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유적으로 면적은 21만 6,862㎡에 이른다. ‘왕궁리성지’라고도 부르며 마한·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백제 왕궁터 왕궁리유적 - 사적 제408호!!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조사 결과 백제 무왕대의 왕궁 외곽담장과 건물지, 석축, 정원유적, 공방지 등의 내부시설이 확인되어 왕궁으로 일정기간 사용되다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 내고 그 자리에 탑, 금당, 강당 등 사찰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 더보기
(익산) 미륵사지 개요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3탑3금당 동양최대의 사찰!!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는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서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 더보기
분황사 == 개요 == 분황사(芬皇寺)는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절(불교)|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불국사]]의 말사다. 신라시대 전성기보다 좀 많이 작아지긴 했어도 아직 '살아 있는' 절로, [[황룡사]]지나 [[감은사]]지와 다르게 분황사'지'가 아니니까 주의. 다만 분황사 주변 일대는 2019년 2월 26일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548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아도]]의 비문에는 칠처가람지허(七處伽藍之墟)[* [[삼국유사]] 제3 흥법편 아도기라 항목에서 칠처가람을 말하며 전불시가람지허(前佛時伽藍之墟)라고 설명한다. 경주에 빈 절터 7곳(칠처가람지허)가 있는데, [[과거칠불|과거불]] 시대의 절터(전불시 가람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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