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동서양

역사학, 문화교양학과, 논술 등, 방통대 근대화동서양 요약 정리 15. 근대의 동아시아적 유통과 중국

롤라❤️ 2023. 1. 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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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근대의 동아시아적 유통과 중국

<<용어정리>>
○ 양무운동: 중영전쟁과 태평천국운동을 계기로 서구의 기술과 교육에 주목한 청의 관리들이 1861년부터 1894년까지 33년간 시도한 개혁운동.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식 군대 창설,
군수 산업을 비롯한 근대적 산업의 발전, 신식 교육 기관 설립 등 광범위한 규모의 서구식
개혁을 도모했다. 나름의 결과를 낳았지만 결국 양무파의 지역색과 부패와 비능률 등이 원
인으로 작용해 실패했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대비되는 양무운동의 실
패를 여실히 드러냈다.
○ 무술변법: 1898년 강유위, 양계초 등의 변법파가 광서제의 지지를 받아 시도한 개혁운
동. 변법파는 체제 내에서 개량적이고 물질적인 근대화를 추구한 양무운동이 철저한 서구화
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서구식 정치제도인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느낀 서태후와 수구파의 역쿠데타로 103일 만에
막을 내렸다.
○ 신정: 양무, 변법 운동의 실패 이후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정부주도의 근대화
시도. 의화단의 난이 진압된 이후 열강의 내정간섭과 내부 요구에 의해 추동되었다. 신정은
과거제의 폐지와 학교제도의 실시, 신식 군대와 경찰의 설립, 입헌과 국회개설 등을 내용으
로 하는 일련의 정치개혁이었으며, 특히 과거제도의 폐지는 해외유학생의 증가를 부추겼다.
○ 과거제 폐지: 신정 개혁의 결과 1904년 과거제가 폐지되고 신식학제가 반포되었다. 1300
여 년간 중국의 관료 배출 시험이자 입신출세의 루트였던 과거제도는 이때부터 고등교육 기
관 졸업, 군사학교 진학, 해외유학 등 다양한 길로 대체된다.
○ 개량파와 혁명파: 청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변법파, 즉 개량파와 동 시
기에 광주봉기를 일으킨 손문 등 혁명파는 청말 새로운 정치공간의 양대 세력이었다. 개량
파는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삼았고 혁명파는 청조를 타도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도쿄 유학생을 중심으로 중국 내외의 젊은 지식인들은 이들의 논쟁에 깊은 관심
을 기울였다.
○ 자의국: 1909년 개설된 중국 최조의 지방의회. 의결기구의 위상을 갖지 못했고 전체 인
구의 0.4%만 투표에 참여했으나 각 지역의 입헌파 신사층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1910년
중앙에서는 자의국에 대응하는 자문기구인 자정원이 설치되기도 했다.
○ 신해혁명: 1911년~1912년 사이에 일어나 중국 최초의 공화국을 수립시킨 혁명. 1911년
보수적인 황족내각의 철도국유화조치로 입헌파 신사층마저 청에서 돌아섰으며, 드디어 후베
이성 우창에서 신군의 무장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곧 다른 성들에 확산되었고 혁명군은
그해 12월 중화민국임시정부 조직대강을 공포해 난징 정부의 임시 대총통으로 쑨원을 선출
했다. 이후 청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가 퇴위하고, 참의원에서 위안스
카이를 제2대 임시대총통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중국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
국이 수립되었다.
○ 엄복: 1900년을 전후해 중국에서 급증한 서양 서적의 주요 번역자 중 한 명이다. 생계를
위해 입학한 복주선정학당에서 근대학문을 습득하고 파견유학생으로 선발,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엄복은 당시 군함, 해군학 등 본래 목적이었던 학문 외에도 인문학 서적을 섭렵했
다. 귀국 후 그는 해군학교인 북양수사학당에서 가르치면서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
evolution and ethics를 천연론(天然論)으로 번역, 출판해 중국 지성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의화단의 난 이후 번역에 전념한 엄복은 국부론부터 아이반호까지 광범위한 서양
서적을 번역, 소개하였다.
○ 번역어: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번역어는 근대적 지식의 유통 양상을 드러내 보여
준다. 중국은 서구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번역어와 함께 경전에서 재해석한 단어와 일본의 번역어를 함께 활용했다.
○ 사회 진화론: 진화론은 동아시아에서 사회이론으로서 좀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것이 사회진화론인데, 특히 일본에서 위력을 떨친 후쿠자와 유키치의 적자생존식의 문명론
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한 무정부주의적 상호부조
론이 더욱 강력한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서구 지식의 수용은 일방적인 이식이 아니라 주체
적인 재해석 과정이었던 것이다.

11초 미녀


<<내용요약>>
1. 중국의 개혁운동과 혁명운동
① 양무운동(33년): 한족 관료들(태평천국에서의 구국을 이룬 증국번․이홍장 등)의 ‘자강’과
‘부강’ 운동 - 강력한 군사력과 각종 근대산업의 육성 추구 - 양무파의 농후한 지역색과 극
심한 정치적 간섭이 근대적 공장 운영방식 성공에 한계 초래 - 청일전쟁의 패배로 좌절
② 강유위의 변법파와 손문의 혁명파가 양대 정치세력으로 등장 - 중국 지식인을 양분하
며 새로운 정치 공간 형성
가. 변법파: 무술변법을 실시했지만 103일 만에 권좌에서 실각, 청조의 탄압 속에서도 입헌
운동 등 개량적 방법 제시
나. 혁명파: 체제전복 주장
2. 도쿄에서의 정치적인 논쟁: 변법파(개량파)와 혁명파의 논전 전개
① 20세기 중국인들의 일본 유학 경향
-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근대화 모델/ 과거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새로운 입신 수단으로서 해
외 유학 부각, 어학적 이점(일본어 습득 용이)
② 중국의 진로를 위한 고민과 조직 결성 및 잡지
개량파: 강유위와 양계초의 보황회-신민총보
혁명파: 손문의 중국혁명동맹회-민보(民報))
③ 입헌군주제와 청조 타도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 - 중국 지식인들의 전국적 네트워크 형
성 - 귀국 후 1911년 신해혁명의 중요 기반
3. 국내의 혁명정세 고양과 신해혁명
① 청조의 양보: 의화단운동의 실패 후 내외의 정치개혁 요구에 수동적이나마 부응
가. 신정을 통해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 약속
나. 한족 신사층 내부에서의 헌정과 의회개설에 대한 높은 요구
다. 1909년에 각 성(省)에 자의국 개설: 선거를 통해 개설된 지방의회 - 지역의 입헌파 신사
층들의 조직화와 활력 증진
② 청조의 반동
가. 1911년 5월 ‘황족내각’ 발족: 한족 신사층의 합법적인 정치 참여 좌절
나. ‘철도국유화조치’: 지방 신사층이 주도한 철도이권회수운동에 타격
③ 청조 타도의 움직임: 개량적 입헌파인 지방 신사층도 청조 타도에 동조
④ 1911년 10월 10일 무창봉기: 양자강 이남의 각 성(省)에서 입헌파와 혁명파의 합작으로
독립적인 성정부(省政府) 구성 - 1912년 청조 붕괴, 중화민국 개국
4. 서구적 근대적 지식의 동아시아에서의 유통
① 서구의 사상과 문화 및 제도의 중국적 수용과 변용 과정
체계화된 학제 외에 출판물과 잡지의 확대/ 서구 서적의 번역(일본의 번역어를 참조한 서구
서적의 대량 번역) - 번역어 공유를 통한 근대적 지식의 동아시아에서의 유통
② 주체에 따라 상이한 서구 지식의 수용 양상
사회진화론: 일본에서는 천황주의적 국가론으로 변질/ 중국에서는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개
인의 개성과 정신을 강조, 사회진화론의 극복과정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두




<<생각해 볼 문제>>
1. 현재 세계화 과정 속에 이질적 문화에 대한 수용 태도를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생각
해 보자.
서구 지식의 수용 양상은 수용 주체에 따라 달랐다. 근대는 분명 서구에서 발원한 것이지
만, 그를 수입하는 주체의 상황과 인식에 따라 그 수용방식과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었
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에 수입된 가장 유력한 사상이었
던 사회진화론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1860년대는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유럽 지성계를 지배했다. 그 후 1870년대부터 자연계의 진화론을 인간사회에도 적용하려는
사회진화론이 등장하여,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 시기는
이른바 제국주의의 시기로, ‘약육강식’을 사회적 진리로 주장하는 사회진화론의 유행은 제국
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사회진화론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스펜서가 주창한 사
회유기체설은 경쟁에 의한 사회 발전을 강조하였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도 크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의 수용은 일본과 중국에서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는 천황주의적 국가론으로 변질되었으나 중국에서는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개인의 개성과 정
신을 강조했고 사회진화론의 극복과정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두하였다.
중국이 일본과 달리 사회진화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침탈을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팽창의 길로 나섰던 일
본의 경우는 사회진화론에 내포된 인종주의적 차별을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없었다. 이렇듯
각국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상이한 문화적 조류를 만날 때 각국의 태도와 수용 방법을 다르
게 만든다. 특히 근대 국민국가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각국의 국민들에게 자국과
타국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오늘
날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세계 각국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민족주의의 성격에
따라 세계화에 반응하고 있다.
2. 오늘날 동아시아의 정보 유통 현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근대성은 서구에서 발원하여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사상과 습속, 문화와 제도의 총합을
의미한다. 비 서구사회에서 근대성의 수용과 정착, 변용의 과정은 지역별로 큰 편차를 지니
며, 그 수용 루트 역시 다양하다. 중국이 서구 근대를 수용하는 데에는 개항장을 통한 직접
적인 수입도 있지만, 엘리트들의 유학 역시 커다란 작용을 했다. 과거제도의 폐지로 유교적
소양을 지닌 과거합격자 내지 수험생 신분의 전통적인 엘리트를 대신하여 새로운 엘리트 계
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체계화된 학제 이외에, 출판물과 잡지의 확대는 근대적 지식을 퍼
트리는 대중교육의 새로운 장이 되었다. 청 말에 발간된 신문과 잡지의 수는 1898년 70여종
에서 5년 후에는 250여 종으로 껑충 뛰었고, 우편제도의 실시로 북경, 상해 등지 대도시의
신문과 잡지는 지방으로도 유통되었다. 특히 각종 정치이슈의 등장과 여론의 활성화는 이러
한 정보의 대중적 유통과 상호 상승작용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번역은 중요한 근대적 지식의 소개자였다. 번역 과정에서 근대적 지식은 어떤 형식으로든
지 현지어의 형태로 탈바꿈하여 소개된다. 중국의 서양 사상수입이 일본식 한자를 매개로
하게 된 것은 청 말과 민국 초의 일본유학생의 역할이 컸다. 무엇보다 같은 한자를 공유하
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식의 서구어 번역이 중국인에게도 쉽게 이해되었던 것이고, 중국보다
앞서 서구사상을 열심히 수입한 일본에는 중국인이 번역하고자 하는 서양서의 일본어 번역
이 이미 상당부분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일본식 한자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식 번역어를 신조한자라고 하며, 이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동아시아 전역에 퍼졌다.
신조한자는 중국경전에 원래 있는 글자를 차용해서 영어에 해당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
역의 일본 여시 막부 말기 빛 메이지 초기에 일본 역시 중국에서 적지 않은 서구문명을 소
개하는 한적을 수입하여 서구에 대해 학습했었다. 일본식 번역어에도 이 중국한적의 번역어
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응용해서 사용한 사례가 많았고, 중국한적의 번역어가 중국 땅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다가 일본에서 보편화된 이후 중국으로 역수입된 사례도 많다. 번
역어의 문제야말로, 근대적 지식이 동아시아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통하는 것을 보
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동일한 한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 배경을 공유
하고 있는 동아시아 삼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물을 수입하면서 새로운 소통 수단을
또다시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던 80년대 이후, 최근
에는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한 문화적 교류는 유사점을 많
이 갖고 있는 세 나라가 서로의 고유한 문화를 서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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