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침기온은 쌀쌀하고 구름 사이로 파란색이 일렁입니다. 그동안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도 날씨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도 되겠습니다. 한번 그렇게 마음을 먹자 가고 싶은 곳이 우후죽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솟아납니다. 잠시 마음을 다잡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물을 찾아 남원 용담사를 다녀왔습니다.
- 남원 용담사
남원 용담사는 남원 시내에서 주천면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남원 시내를 벗어나 조금만 가면 용담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데요. 용담사는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백제 성왕 때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전설이나 유물을 보아 신라 말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전 이곳의 용담 못에는 이무기가 살면서 사람들을 해치곤 했는데 도선이 이곳에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한 다음부터는 이무기의 행패가 없어지고 승천했다고 합니다.
남원 용담사는 여느 절과 달리 해탈교도 무슨 무슨 문도 없습니다. 주차장에서 툭 터진 담장 사이로 절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일반 절에서는 대웅전 건물을 먼저 보게 되는데 용담사의 경우 석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 칠층 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남원 용담사 칠층 석탑입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석탑은 단아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용담사 칠층 석탑은 달랐습니다. 날렵한 모습을 하고 높이 솟아 있어 역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1층 기단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층층이 포개 놓아 7층 탑이 되었습니다. 폭은 좁고 높이는 하늘을 찌르고 있는 구조입니다. 특히 탑신의 몸돌은 2층부터 급격히 작아져 옥개석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전체적인 형상을 볼 때 고려 시대 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 석등
칠층 석탑과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미륵전 사이에 석등이 하나 놓였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61호로 지정된 석등입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팔각 간주석 석등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하여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고려 시대 석조 미술의 장중한 특징을 표현하고 있어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연꽃 문양이 새겨진 받침돌을 대칭으로 배치하고 그 중간을 팔각기둥이 받치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 위에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렸습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어 4방을 밝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대칭으로 놓인 연꽃 받침대가 아름다운 석등입니다.
- 보물 석조여래입상
석등 앞에는 보물 제42호인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미륵전이 있습니다. 미륵전은 겉에서 볼 때는 이층 구조를 하고 있지만 내부는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건물에 벽체를 두르지 않아 사방이 트였습니다. 석조여래입상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6m나 되는 불상입니다. 대좌는 타원형으로 입상을 발밑에 촉을 끼워 세웠습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많이 되어 세부적인 형상은 알 수 없으나 풍겨져 나오는 위엄은 세월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광배와 불상은 하나로 되어 있고 측면에서 보는 모습은 날렵합니다.
미륵전을 보고 있는데 북이 크게 몇 번 울리고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립니다. 청아한 목탁소리가 조용했던 절의 적막을 깨웁니다.
- 용담사 풍경
미륵전 옆에는 장독대가 있습니다. 절에 갔을 때 장독대가 보이면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데 절의 살림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양간을 유지하는 것은 곧 장독대이거든요. 어릴 적 집에 있던 장독대 옆에는 봉숭아, 맨드라미가 있었는데 이곳은 설악초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용담사는 평지 가람이기 때문에 마당을 중심으로 전각과 일반 건물들이 빙 둘러 배치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마당에 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면 전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미륵전이 있지만 좌·우측에 대웅전과 무량수성미전이 있습니다.
요사채 앞에 우물이 보입니다. 그런데 우물이 평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작은 전각 건물을 닮은 지붕이 되어 있어 그렇게 느껴집니다. 역시 뒤쪽을 보니 칠성각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칠성각은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민간신앙에서는 칠성신은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 수명을 늘려주고,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었습니다.
절 입구 담 옆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용담사 중창 사적비입니다.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보입니다. 비문이 작은 글씨로 또박또박 새겨져 있습니다. 문장 사이사이에 용담사 중요한 이력이 담겨 있습니다.
용담사 경내를 천천히 걷다 보면 꽃들이 말을 건넵니다. 여름철에 한창 피어야 할 배롱나무꽃은 장마 때문에 힘들었다고 얘기합니다. 모처럼 밝은 햇빛을 보면서 애써 웃음 짓고 있지만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다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장독대를 보면서 떠올렸던 봉숭아꽃도 보입니다. 봉숭아꽃 역시 장마에 나른해진 모습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탑 주변에서는 잔디 깎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장마가 떠난 용담사는 다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용담사 옆으로는 하천이 흐르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주천 방향에서 흘러온 물길이 용담사를 끼고 동쪽으로 크게 돌아서 남원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물길이 작은 산에 부딪쳐 굽이쳐 흐르면서 멋진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정자 하나 서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류를 즐기기에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 보물도 보고 주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
용담사를 보고 나오면서 잘 왔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절은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조용해서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얻었습니다. 또 용담사의 보물 석조여래입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칠층석탑과 석등도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 주변에는 호기리 마애여래좌상, 주천 석장승, 육모정과 구룡폭포 등과 같이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연계해서 계획을 세워도 좋겠습니다. 용담사는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