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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교육의 현장으로 가볼만한 조선시대 교육의 장소 여주 향교를 소개합니다!

롤라❤️ 2021. 1. 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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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관광코스 중 하나인 여주 향교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 서울에 국립교육 기관인 성균관이 있었다면 지방에서의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이 담당하였습니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다. 원래는 여주읍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타버린 후, 1685년(숙종 11)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고개에 재건립하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부락에 자주 괴질이 발생하고 풍수학적으로 불길하다 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기 위하여 한 유생이 편지를 써서 바람에 날리니 현재의 위치에 날아와 떨어져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내삼문, 동무와 서무, 홍살문이 있다. 대성전은 맞배지붕 익공계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고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5성 10철, 송의 6현과 한국의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성전 옆쪽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한식 골기와를 얹고 방풍판을 달았는데, 익공계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무에는 정몽주·송시열·김인후, 서무에는 설총·안향을 봉안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고 한식 골기와를 얹었으며, 동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이고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내삼문은 솟을대문으로 맞배지붕이고 1칸씩이다. 여주향교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건물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그동안 계속해서 단청 등을 보수하여 현재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6, 7명이 담당하고 있다."




​ 향교는 서원의 차이점은 그 기능은 유사하지만 서원이 사립교육기관이라면 향교는 국립기관으로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이 되었던 곳이라고 하네요

 

 

​여주 향교는 고려말기에 상동 마암근처에 세웠으나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지고 홍문리에 다시 지었으니 마을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등 풍수지리상 불길하다하여 지금의 여주군 교리로 옮겨져 몇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주 향교는 문화재자료 제3호로 1983년 9월19일에 지정이 되었습니다.​

 

 

​여주향교를 둘러보려고 하니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쉽게도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까치발을 하고 낮은 담장 넘어에 있는 향교를 들여다 봅니다.​

 

 

​향교는 제향공간과 교육을 위한 강학 공간으로 구분이 되어있었습니다. 담장 넘어 보이는 아래와 위의 두 건물중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것이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습니다.​

 

 

​명륜당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위해 가는길 빨간 열매의 산수유가 그대로 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봄이면 샛노란 꽃을 피우며 향교와 어우러졌을 산수유 겨울철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겨울의 풍경을 살짝 돋보이게 해주는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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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한식 골기와를 얹었있는 건물로 이외에 건물로 동무와 서무와 내삼문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니 현재는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성전으로 오르는 솟을대문 내삼문

 

 

​명륜당 뒷편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은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으로 앞면 3칸 , 옆면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 자 모양이 맞배지붕의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새 날개모양으로 짜맞춘듯 익공형식으로 꾸며졌으며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대성전 앞에는 수령 150년의 가슴높이 나무둘레가 약 30cm되는 보호수인 향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나무 반대편에는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꼭 심는다고 하죠. 이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학자들이 학문을 정진하는곳을 행단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유이기도 하다고 하네요.

 

 

​여주 향교에서는 해마다 5월11일과 9월29일 두번에 걸쳐서 춘계, 추계 석전대제를 거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봄이면 노란 산수유가 가을이면 샛노란 은행나무를 그리고 사시사철 푸르름을 볼 수 있는 향나무까지 있는 여주의 공립교육기관인 조선시대 향교는 여주 관광코스에 함께 넣어서 주변을 돌아보아도 좋을 곳 같았습니다.

 

 

 

어서빨리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제대로 관람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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