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와동서양

역사학, 문화교양학과, 논술 등, 방통대 근대화와동서양 요약 정리 3. 영국의 근대화

롤라❤️ 2023. 1. 2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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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영국의 근대화


<<용어정리>>
○ 국민 정체성: 근대성을 측정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로,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의식을
뜻한다. 국가나 국민은 다양한 구성 요소를 가진 집단이 자신들을 하나라고 인식해 가는 과
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충성심과 일체감도 여러 계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
미에서 국민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일컬어진다.
○ 곡물법: 곡물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곡물 수입을 금지해 곡물의 고가격을
유지하는 법. 영국 내의 지주층을 보호하는 법이었다. 자유무역주의를 내세운 상공업 층은
이 법을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다.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어 상공업에 기반을 둔 중간 계급이 의회에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폐지되었다. 이는 영국 자유무역주의의 실질
적인 개막으로 일컬어진다.
○ 산업혁명: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에 걸쳐 진행된 영국의 산업화를 가리킨다. 1881년
토인비가 강연에서 사용한 뒤 쓰이게 된 용어로, 가장 앞선 데다 급속히 진행되었다는 의미
로 혁명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농업 생산력의 증가, 과학 기술의 발전 및 화석 연료의 사
용 등을 바탕으로 방적 산업 부문에서 기계화가 시작된 뒤 산업 생산의 양상이 급속도로 바
뀌었다. 이후 경제의 중심은 농업에서 산업으로 이동했고, 도시 인구가 급증하고 사회관계
역시 크게 바뀌었다.
○ 스피넘랜드 제도: 1795년, 농한기에 농촌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빵 가
격에 따른 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 이는 노동력의 유연한 이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도
시 상공업 층의 원성을 샀다.
○ 식민지: 제국주의적 진출을 통해 종속시킨 국가나 지역을 의미한다. 영국의 근대 내셔널
리즘을 공고하게 만든 것은 식민지 진출이었다. 영국민 내부의 갈등은 식민지 진출을 통한
성취를 통해 무마되었고, 일체감은 타자로서 식민지인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미
개한 식민지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하는 우월한 영국인이라는 이미지는 영제국의 통합에서 중
요한 자원이었다.
○ 이중혁명; 18세기 말 서구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시민혁명이,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일
어났다. 이를 이중혁명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은 정치적 근대화의 첫 실험
이었고,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경제적 근대화의 모델이 되었다.
○ 인종: 근대적 국민 정체성의 형성 과정은 인종적 편견 위에서 ‘우월’한 측이 ‘열등’한 측
을 흡수 통합하는 과정이었다. 영국의 국민 정체성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아일
랜드의 통합과정이었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분열과 차이가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통합
의 기준은 긍정적인 가치의 표현으로 간주된 잉글랜드인에게 맞춰졌고, 스코틀랜드나 아일
랜드인, 프랑스인, 식민지인들은 반대로 부정적이고 지양해야 하는 속성을 보유한 것으로 여
겨졌다.
○ 인클로저: 기존에는 좁게 구획되어 있던 토지를 통합된 목초지로 바꾸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운동을 의미한다. 양모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 보다 양을 기르는 것이
적은 노동력으로 큰 이윤을 내는 방법이 되면서 확산되었다. 이는 수많은 농민들을 도시로
보내 산업 노동자가 되도록 하는 효과도 낳았다.
○ 제국: 영국은 인도, 캐나다, 아프리카, 서인도 제도 등을 식민지로 삼으며 제국으로 발돋
움했다. 산업화로 인해 불거진 계급적 갈등은 대영제국의 국민으로서 갖게 되는 실질적, 상
징적 일체감 안에서 대부분 녹아 버렸다.
○ 젠더: 근대인이란 범주에는 성별이 표시되지 않았지만 매우 남성적인 개념이었다. 자력
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근대인이란 기준은 당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립의 조건이 봉쇄된 여성들이 성취할 수 없었다. 여성은 국내에 존재하는 타자로서, 남성
국민의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이었다. 즉, 젠더 구분선은 근대성의 형성에서 핵심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다.

<<내용 요약>>
1. 산업혁명의 원인:
① 정치적 안정(군주의 간섭을 견제하고 지주와 상공업 사이의 정치적 타협을 바탕으로 이
윤활동을 추구하기에 적합한 환경 조성)
② 농업 부문의 변화 ③ 산업 노동력 확대 ④ 풍부한 석탄과 철 ⑤ 해외 진출에 따른 자극
2. 영국 산업화의 특징: 생산방식과 기술의 혁신 - 케이의 자동 북, 하그리브스의 제니 방
적기, 아크라이트의 수력방적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수력발전에 비해 입지조건이나 기
후에 구애받지 않고 기계를 돌릴 수 있는 동력 제공)
3. 산업화가 가져온 변화:
① 산업의 중심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이동/ 인구의 대다수는 도시로 집중
② 일상적 생활양식의 변화: 노동 조건의 변화 - 노동자 자신의 통제력 상실/ 기계 및 기술
의 도입과 숙련 노동자의 입지 약화/ 여성과 아동의 노동력 증대
4. 영국 산업화에 대한 평가:
① 긍정적 시각: 정치, 사회, 경제적 여건을 두루 갖춘 이상적인 모델로 부각
② 비판적 시각: 영국의 사례가 생각보다 대단하거나 급속한 것이 아니었다는 시각
③ 근대화 자체에 대한 비판 - 근본적 문제 제기(산업화로 인한 물질적 진보가 사람들의 삶
을 개선했는가?)
5. 국민정체성의 형성:
① 근대성을 측정하는 지표 -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의식의 형성 여부 및 정도
② 18세기 초부터 1815년 나폴레옹전쟁 사이 - 잉글랜드를 넘어서 대브리튼을 포괄하는 국
민 정체성의 형성(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의 정치적 통합)
③ 종교, 전쟁, 제국 등의 요소 - 특히 제국으로서 행한 식민지 진출은 영국 근대 내셔널리
즘의 결속 공고화
6. 타자의 산출: 국민으로서의 일체감 형성에는 비국민인 ‘타자’의 존재가 필수적 - 외부 타
자(식민지), 내부 타자(중간계급에 대비되는 노동계급, 근대 남성에 대비되는 근대 여성)
7. 근대인의 폐쇄성과 배타성:
① 개념: 자력으로 살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 -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유산인 이성
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이상의 형상화
② 당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립의 조건이 봉쇄된 여성들로서는 성취할 수 없는 개념
- 근대적 개인은 가족적, 공동체적 유대로부터 벗어난 자율적 남성으로 규정됨으로써 여성
은 처음부터 배제.



<<생각해 볼 문제>>
1.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근대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논의해 보자.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최초의 근대적 산업국가가 되었다. 산업혁명의 파급력은 경제 부
문에만 그치지 않았다. 영국에는 모든 면에서 이전과 다른 근대화된 사회가 출현했다. 강력
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쥐고 제국으로 군림하던 영국은 근대화의 이상적인 모델로 간주되었
고, 후발 주자들의 근대화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기준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대
화가 산업화와 동일시되면서,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바로 경제 발전과 물질적 풍요
라는 사고가 팽배해졌다. 실제로 산업 혁명이 낳은 물질적 부는 인간의 삶을 순환적이고 맬
서스적인 경제에서 직선적으로 발전하는 경제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만
으로 근대화를 설명하거나 달성할 수는 없었다.
근대화를 통해 탄생한 국민 국가는 경제에서 일어난 산업 혁명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 일
어난 시민혁명을 필요로 했다. 프랑스혁명은 보통 가장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간주된다. 프
랑스혁명은 최초의 시민혁명은 아니지만, 가장 극단적인 국면까지 격렬하게 전개되어 당대
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정치사상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토양이 되었다. 근대 정치사상의
두 축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제도와 체제로
탈바꿈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적 지향으로 삼는 민주주의 체제의 토대가 놓
인 것이다.
프랑스는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적 자유를 실현하여 산업혁명을 제도적, 정치적으로 뒷받
침했고, 산업혁명이 낳은 경제력은 프랑스혁명의 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물질적 풍요를 낳
았다. 근대화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정치적 측면에서 국민국가의 수립 및 민주주의 체제
의 발전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적 측면에서 산업화이다. 양자를 선도했던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다른 근대화 경로를 밟았다는 점은 각 국가, 지역의 근대화 과정이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 산업화 및 근대화에 따른 사회의 명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산업화와 근대화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이전 사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
던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았다. 기술과 생산방식의 변화로 물건의 대량 생산과 광범한 유통
이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드디어 맬서스적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
러나 한 편으로 자본과 이윤의 집중, 계층 간의 격차 심화, 경기 변동과 기술 변화로 인한
주기적인 실업, 생활여건을 악화시키는 도시화 등 구체제와는 양상을 달리한 사회문제가 등
장하기 시작했다.
일단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획기적인 증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동력을 사용하는 기계가
등장해 공장제 생산과 분업이 도입되면서 비숙련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짧은 시
간 안에 많은 양의 규격화된 저가의 제품이 대량 생산될 수 있었다. 산업혁명의 전제 조건
이었던 농업혁명 역시 적은 노동력으로 보다 높은 생산을 이끌어 내는 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영국에서 면직물 생산 부문에서 최초로 일어난 기계화는 점차 관련 분야의 산업화
를 촉진했고, 원료 운송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시작된 철도 건설이 기폭제로 작용해
전 산업의 격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인류는 인구가 주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었
던 순환적 발전의 족쇄에서 풀려난 것이다.
공장제의 도입은 적은 노동으로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높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려야했다. 일단 노동과정을 노동자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정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생산은 노동자보다 기계의 속도에 맞춰졌고, 출퇴근과 휴식시간에 엄격하
게 통제되었다. 고용주들은 임금을 지불하는 만큼 노동자의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기계와 분업의 도입은 숙련 노동력의 수요를 크게 줄였고, 여성과 아동 노동을
앞세운 비숙련 노동자가 대규모로 생산 현장에 투입되면서 숙련 노동자들은 실업을 겪거나
임금 하락 및 독립성을 잃는 등 지위 하락을 겪어야 했다. 남성 중심의 숙련 노동자와 달리
새롭게 임노동시장에 등장한 여성과 어린이들은 싼 임금에 비인간적으로 혹사당했다. 기계
의 도입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사회보장제도는 등장하
지 않았고 농촌 공동체는 붕괴되었으며 산업 혁명기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 불황은 노
동자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비좁고 불
결한 도시에서 가까스로 연명해나가기 일쑤였다. 노동 문제는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했고,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노동운동은 이런 배경 위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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