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프랑스의 공화국 건설과 식민주의 문제
○ 프랑스 근대화: 프랑스의 근대화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 혁명이 낳은 가치들
은 근대 세계의 정치적 풍경을 바꿔 놓았다. 이후의 모든 혁명과 새로운 국가들이 근대적
정치체제의 모범으로 삼았던 프랑스 공화국은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기도 했다. 모
든 인간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공화국이 타국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국이었다는 모순
은 프랑스 근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 프랑스 제3공화국: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 승리하여 파리를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던 1870년 가을에 수립되어 최장기간 지속된 정권으로서, 1939년 2차 세계대전
의 발발로 무너지기까지 약 70년간 유지되었다. 1789년 혁명 이래 제3공화국의 수립까지
100년이 안 되는 사이 프랑스는 혁명과 쿠데타의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2번의 공화국과 2번
의 제국을 세우고 붕괴시켰다. 프랑스에서의 공화주의란 다름 아니라 프랑스식 민주주의를
말하는데 그 제도를 확립시킨 것이 제3공화국이었다. 현재 콜레쥬 드 프랑스 교수인 피에르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은 인민의 정치 참여의 권리를 신장하는 여러 단계를 통해 실
현된 것이 제3공화정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공화주의 역사가인 모리스 아귈롱
(Maurice Agulhon)은 제3공화정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제도와 정치적 관행의 토대를 쌓았
다고 본다.
○ 소생산자: 프랑스 사회의 큰 특징은 한국이나 영국의 산업화과정과 달리 도시의 소생산
자가 상당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공화정은 이러한 사회적 특성 위에서 가능했
다. 공화정은 생산자가 사회의 근간이며 가치 있다는 인식 위에서 소 재산으로 영위하는 인
민의 삶에 대해 안전과 안정을 보장해주려고 했다.
○ 프랑스 제국: 프랑스는 19세기 후반에 공화국일 뿐 아니라 제국이었다. 영국 다음가는
해외 영토와 주민을 지배하는 강대한 제국이었던 프랑스는 1600년대에 영국, 스페인 세력과
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중남미의 카리브 해 연안에 위치한 섬들인 마르티니크(Martinique) 와 과들루프(Guadeloupe), 기안(Guyane) 등을 확보했다. 정치적 안정을 찾은 제3공화정기에
재차 확장된 프랑스의 식민지는 크게 아프리카 내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멀리 인도차이나
였다. 프랑스는 세네갈(Senegal)과 기니(Guinee)에 상관(商館)을 설치했고 남태평양의 타이
티와 주변 섬들은 1842년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알제리와 인도차이나를 점령했다. 1896년
에는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를 정복했다. 이 외에 레위니옹(Reunion) 등 인도
양 남쪽의 여러 작은 섬들도 차지했다. 1890년대에서 10년간은 서구 열강이 집결하여 광대
한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는 시기였고, 사하라 이남의 광대한 중앙아프리카를 차지한 프랑
스는 연면적과 연인원, 또 경제적으로 미국, 독일, 그리고 영국에 다음가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 프랑스 식민주의: 프랑스 제국주의의 폭력성은 분명하고 심각했다. 식민 통치는 물리적
인 폭력은 물론이고 식민지의 민족들이 문화적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들었다. 인간
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려는 프랑스 사회의 원칙과 이러한 식민주의가 양립 가능했던 이유
는 우선적으로 인종주의 탓이었다. 한편으로는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
다. 하나는 식민지를 통치해야 하지만 합리적,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현실비판이었고, 나
머지는 공산당을 비롯한 노동운동가들에 의해 제기된 식민지배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주
장이었다.
○ 알제리: 북아프리카 연안의 알제리는 프랑스 국토의 5배가 넘는 땅덩어리이며 석유와
광물 그리고 사하라를 가진 자원의 보고이다. 알제리는 지정학적으로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
카를 연결하는 관문이며 역사적으로 고대 페니키아, 로마, 터키의 지배를 차례로 받아온 문
명권이다. 프랑스는 1830년 7월 군 병력을 파견하여 해안 도시들과 알제를 공격, 정복했다.
평원지대의 16만 8천 헥타르가 프랑스 행정부로 전유되었고, 1845년 알제리 점령지역 전체
가 3개의 프랑스 도(道)로 편입되었다. 이슬람과 아랍어가 금지되었고, 이주한 프랑스인들이
식민사업자로서 지배층을 형성했다. 알제리 고유의 언어와 전통과 의식은 파괴되고 기독교
백인이 산업과 경제 그리고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식민지 체제가 공고해졌다. 이 같은 식민
지배의 방법과 수단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서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에도 사용되었다.
○ 인도차이나: 1860년대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점령했다. 이 지역은 현재의 베트남, 라오
스, 캄보디아를 의미한다.
○ 마다가스카르: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는 아프리카 남단에서 인도를 향한
항진에 긴요한 전략지이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프랑스는 이 섬을 1896년에 정복
했다.
○ 식민지 교육: 식민지를 겪는 민족들에게 최대의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
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양자 관계는 서로 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측이
다른 측을 지도하는 형태를 띠었다. 그것은 서양 근대화의 척도가 된 개인의 자아와 이성을
다른 인종에게는 부정하는 태도였다.
○ 프랑스 문화권: 흔히 프랑스 문화권(Francophone)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북아프리카, 서
부 아프리카, 흑아프리카의 아프리카 내륙, 그리고 캐나다의 일부, 카리브해의 전략적 섬들
이 포함된다. 인도차이나 역시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한 불어권 지역이다.
<<내용 요약>>
1. 프랑스의 정치적 소요
1789-92년 왕정 폐지 이후 1870년 제3 공화국 수립까지 혁명과 쿠데타의 정치적 격변- 2
번의 공화국과 2번의 제국 경험.
제3공화국(1875): 전시 상태에서 수립되어 최장기간 지속된 체제,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무너지기까지 약 70년간 유지
2. 프랑스에서의 공화정
1) 공화정의 개념:
① 1인의 지배가 아니라 인민 다수에 의한 통치를 구현하는 제도(정치원리) - 1792년 9월 2
일 공화정 선포와 함께 특권자들의 권력이 아니라 지금까지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인민이 주
권을 갖는 정치체임을 천명(인민이란 사회의 거의 전 계층. 부자와 빈민으로 나뉘는 것도
아니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으로 대립하는 것도 아님. 소생산자들을 널리 포함).
② 전쟁이라는 비상한 상황에 대처하는 체제: 국민적 혁명 의지와 참여를 유도하면서 국민
에게 보장과 보상을 공약; 소생산자와 중간 부르주아가 합세하여 합의와 분란을 겪어가며
이루어낸 체제(1792년 4월 이후 지속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의 불리한 전쟁 속에 결집
된 혁명의지)
2) 광범위하고 강대한 제국주의국가
① 16세기 이래 시도된 식민제국 건설 노력은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재개
② 제3공화정기에 식민주의 정책이 한층 명백해짐: 아프리카 내륙, 북아프리카, 인도차이나
가. 1830년에 서부 아프리카 해안에 본격적으로 진출, 세네갈(Senegal)과 기니(Guinee) 상관
(商館) 설치
나. 1830년부터 수행된 알제리 정복 - 1842년 남태평양의 타이티와 주변 섬들 보호령화
다. 1860년대 인도차이나 점령.
라. 1896년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정복 - 자연 자원이 풍부한 세계 4번째의
섬으로 아프리카 남단에서 인도를 향한 항진에 긴요한 전략지
마. 1890년대의 10년간: 집결한 서구 열강과 함께 광대한 아프리카 대륙 분할하면서 사하라 이남의 광대한 중앙아프리카 차지
3. 공화국과 식민주의의 관계
1) 공화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인 성격의 혁명으로 노예제 존립 근거 폐지
프랑스혁명기 이후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끄는 독립 투쟁 등의 반란;
강제 노동방식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설탕, 코코아, 커피) 경영의 경제적 비효율성.
2) 프랑스 식민통치의 심각한 폭력성: 프랑스와 식민지의 양자 관계는 서로 이성을 기준
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가진 측이 지도하는 형태 - 서양 근대화의 척도가 된 개인
의 자아와 이성을 다른 인종에게는 부정하는 원칙과 태도
① 알제리 정복, 인도차이나 침공, 마다가스카르 정복: 피식민지인들의 고유한 정신과 교육,
그리고 문화에 대한 자기 부정 강제
②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칙 내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對 근대 서구 문명이 성취한
기술력에서 비롯한 서구 우월주의의 갈등 - 인간의 자유 평등을 제창한 프랑스의 보편 정
신은 다른 지역과 다른 문화도 동화시킬 사명이 있다는 인종적 우월주의로 비약되면서 논의
지배.
3) 프랑스 공화주의의 투쟁적 휴머니즘: 공화국의 기저에 존재하는 인간과 인격을 존중하
고 양성하려는 정치적 의지 - 의회주의와 보통선거권 같은 명시적 제도를 넘어서서 약 한
세기간의 투쟁과 성찰로 이룩
<<용어정리>>
<<생각해 볼 문제>>
1. 정치적 의미에서 프랑스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역사에 대해 정리해 보자.
정치적 의미에서 프랑스의 근대화는 공화주의로 압축될 수 있다. 공화정은 정치 원리 측
면에서 인민 다수에 의한 통치를 실현시키는 제도이며,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이 원칙에 근
거해 신분이나 계급, 부로 나뉘지 않는 모든 인민이 주권을 갖는 공화국을 선포했다. 혁명
시기 프랑스에서 공화국은 전쟁으로 국민을 결집시켜 참여를 유도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비
상수단이기도 했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왕정 폐지부터 나폴레
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황제로 즉위할 때까지 이어졌던 제1공화국과 나폴레옹 전쟁 패배
후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부르봉 왕조가 복귀할 때까지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 제1제
정, 샤를 10세의 왕정과 7월 혁명으로 즉위한 시민 왕 루이 필립의 7월 왕정, 이를 뒤엎은 2
월 혁명과 그 산물인 제2공화국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2제정까지 프랑스는 채 100년도 되
지 않는 기간 동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쿠데타와 정변이 끊이지 않는 사이 전쟁 역시 지속
되었다. 제3공화국역시 보불전쟁의 패배와 파리코뮌의 유혈진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전시
의 혼란에서 다급하게 수립된 제3공화정은 70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프랑스식 민주주의로서
공화주의의 형성과 제도 확립에 성공했다. 현재 학자들은 제3공화국이 오늘날 프랑스 정치
의 직접적 토대를 쌓았다고 평가한다.
대혁명기의 토지 분배로 이루어진 소농 위주의 프랑스 사회는 제3공화정기에 와서는 상당
한 수준의 산업화에 도달했고, 본격적인 2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었다. 19세기의 여느 자본주
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계급 격차가 심각했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시위와 파업으
로 표출되는 한편 국가와 고용주의 해결책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인구 변
화가 적었고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소 농민과 도시의 소생산자, 소상
점이 상당히 보존되었고, 다수 농민과 노동자는 하층 부르주아와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화국을 이룩한 집단이었으며, 공화국은 소생산자인 인민의 삶을 보장하고자 했다.
프랑스혁명이 선언한 자유, 나아가 평등의 구현을 위해 갈등 속에서도 인민이 하나의 공화
국을 이룩한다는 역사의식이 공화국을 지탱하는 믿음이었고, 내우외환 중에도 공화국의 시
민들은 하나하나 근대인으로서 자의식을 다져나갔던 것이다.
2. 프랑스의 식민지가 프랑스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에 관해 논의해 보자.
프랑스는 이미 1500년대부터 식민지 경쟁에 뛰어 들었다. 본격적인 확장에 성공한 17세기
에 프랑스는 민간 회사의 식민지 진출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프랑
스는 식민지와의 불공정 무역과 플랜테이션 농장 등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여타 식
민 제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역시 산업화에 필요한 원료와 노동력, 시장을 식민지로부터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와 프랑스의 관계는 경제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지적한 불공정
무역과 플랜테이션 농장은 국가 권력의 개입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구조였고, 제국주의가
낳은 경제적 이득은 반드시 정치적 성격을 가지게 마련이었다. 이미 17세기부터 프랑스 왕
정은 절대주의 국가의 중앙 권력을 활용해 식민지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수탈하는 한편 노예
를 부리고 가톨릭을 강요하는 등 폭력적인 통치 구조를 세웠다.
18세기에 영국에 비해 뒤떨어졌던 프랑스의 팽창은 대혁명의 충격에 주춤했다. 혁명가들
은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고발했고, 프랑스의 식민지 역시 혁명의 슬로건을 따라 독립을 요
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복잡한 성격을 갖는다. 보편적인 인권을
부르짖는 대혁명의 기치 아래 프랑스는 구대륙의 특권 계층과 맞서 싸우는 동시에, 신대륙의 ‘미개인’들을 계몽하는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해방에 대한 열정과 정복욕이
뒤얽힌 프랑스의 팽창은 나폴레옹의 제국에서 재개되었고, 제3공화정에 이르러서는 식민주
의 정책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사하라 이남의 중앙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명실 공히 열강이자 제국이었던 프랑스는
공화주의적 이상과 식민주의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제국주의가 전면적으로
추진되던 시기, 식민지의 현실은 비교적 상세히 보도되었고 일간지 독자의 비율도 높았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당대 크게 유행한 생물학적 인종우열론을 통해 식민지를 바라보았다.
나치 시대까지 유럽에 팽배했던 우생학은 피식민지의 인간과 식민 종주국의 인간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차별하는 시각을 통해 19세기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개별 시민의 수준에서 합리
화했던 것이다. 사실 프랑스 내부에서조차 계급간의 격차가 극복되지 않았던 점을 상기하면,
이러한 인식은 당대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셈이다. 인종적 우월주의는 인간의 자유 평
등을 제창한 혁명 이념과 결부되어 다른 지역과 문화를 프랑스와 동화시켜야 한다는 사명론
으로 귀결되었다.
3. 식민주의 비판 사상이 프랑스에서 제기된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혁명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공화국인 동시에 제국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프
랑스인들은 공화국 시민이 인종주의적 식민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중성에 큰 문제를 느
끼지 못했다. 당대에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었던 생물학적 인종 우열론, 소위 우생학 열풍은
학문에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다수 대중을 무비판적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은 주류 의견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식민주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온건한 현실비판으로, 식민지를 통치하는 현실
에 대해 원칙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대신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통치를 촉구하는 견해였
다. 나머지 하나는 보다 급진적이고 원칙적인 견해로, 흔히 노동운동가와 공산당 활동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이들은 식민지 지배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1차 세계대전 이
후 유색인 이주 노동자들과 섞여 살았던 노동자들은 연대의식을 가지고 식민주의에 반대했
으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결과물인 제국주의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며 비판했다.
1930년대 파시즘의 대두에 맞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대중운동과, 그 결과로 수립된 인민전선
정부는 식민지 제도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들이 비판하는 기존 제도 안
에 식민주의를 포함시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1차 대전 이후 세계적 추세에 따라
프랑스 식민지에서도 고조된 민족주의 운동이 파리의 지식인 및 노동자들과 상당한 교류를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인종주의와 결합한 근대화 이념이 식민지인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이를 우월한 문명의 사명이란 미명하에 정당화하던 이
시대에도 혁명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사람들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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