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국내] 추천여행 334

(익산)토성

개요 익산토성은 금마면의 면 소재지에서 서북쪽 약 1.5km 떨어진 오금산의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에는 미륵산이 있고 앞쪽은 익산평야가 내려다보인다. 서동왕자가 마를 캐고 오금(五金)을 얻은 백제시대 토성!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오금산에 있는 산성인데, 둘레는 약 714m의 성으로 흙과 돌을 같이 사용하여 쌓은 테머리식 토성이다. 현재 토성 내에는 남문지와 수구지, 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오금산성(五金山城)’, 보덕성(報德城)‘ 이라 불리어 지는데, 오금산성은 백제 무왕이 어려서 이곳에서 마를 캐면서 오금을 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보덕성은 보덕국왕인 안승이 670년 6월 금마저(金馬渚=현 익산)에 자리 잡은 후 684년 11월까지 보덕국이 자리한 곳이라..

(익산) 왕궁리 유적

개요 왕궁리성지라 불리는 왕궁리유적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유적으로 면적은 21만 6,862㎡에 이른다. ‘왕궁리성지’라고도 부르며 마한·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백제 왕궁터 왕궁리유적 - 사적 제408호!!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조사 결과 백제 무왕대의 왕궁 외곽담장과 건물지, 석축, 정원유적, 공방지 등의 내부시설이 확인되어 왕궁으로 일정기간 사용되다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 내고 그 자리에 탑, 금당, 강당 등 사찰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

(익산) 미륵사지

개요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3탑3금당 동양최대의 사찰!!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는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서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

(익산 관광지) 금마저수지

또 다른 한반도가 있다, 금마저수지! 미륵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보면 대한민국 지도와 똑 닮은 모양이 나타난다. 다름 아닌 금마저수지로서 그 모양이 대한민국 지도를 닮았다고 해서 지도연못이라고도 불린다. 새벽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한반도 지형은 너무도 아름답고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미륵산을 발원지로 안정적으로 용수가 공급되는 금마저수지는 1년 365일 물이 마르지 않으며 주변에 축사나 공장 등 오염원이 없어 1급수의 수질을 자랑한다. 저수지 주변에는 서동공원과 마한관이 있는데 공원에는 백제무왕의 동상과 서동선화공주 조각상 등 많은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마한관에서는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탁 트인 푸르른 금마저수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보자! 주말에 가족과 함께, 또는..

분황사

== 개요 == 분황사(芬皇寺)는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절(불교)|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불국사]]의 말사다. 신라시대 전성기보다 좀 많이 작아지긴 했어도 아직 '살아 있는' 절로, [[황룡사]]지나 [[감은사]]지와 다르게 분황사'지'가 아니니까 주의. 다만 분황사 주변 일대는 2019년 2월 26일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548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아도]]의 비문에는 칠처가람지허(七處伽藍之墟)[* [[삼국유사]] 제3 흥법편 아도기라 항목에서 칠처가람을 말하며 전불시가람지허(前佛時伽藍之墟)라고 설명한다. 경주에 빈 절터 7곳(칠처가람지허)가 있는데, [[과거칠불|과거불]] 시대의 절터(전불시 가람지..

황산벌 전투

[[660년]] 당군이 [[황해]]를 건너 덕물도[* 지금의 [[인천광역시]] [[옹진군(인천)|옹진군]] [[덕적면|덕적도]]]에 [[상륙]]하면서 나당 연합군의 본격적인 백제 공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덕적도에서 나당연합군이 만났음에도 백제가 이를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완전하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수나라부터 서해를 횡단하여서 평양으로 직공하던 적이 몇 번 있었고, 전과는 달리 약간 남쪽으로 오기는 하였지만, 신라왕이 군대를 이끌고 한강유역까지 북상하였기에 황해도를 공격해서 평양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이전까지 중국의 목표는 오로지 고구려로, 고구려만 주구장창 공격하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백제를 갑자기 공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였다. 다..

반응형